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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고 살리기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2014-08-20 18:01:47
조회 1710
일반고 살리기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김경근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일반고 살리기를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일련의 흐름을 지켜보면서 뭔가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자사고의 도입에 따라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로 이어지는 수직적 서열체계가 확립되었는데, 이에 따른 심각한 부작용과 폐해가 본격적으로 노정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일반고에 학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과도하게 집중되어 수업과 생활지도가 어려운 점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소아적 이해관계를 떠나 생각해보면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학교 간에 학생들 사회적 구성(school mix)의 층화가 진행되면서 학교가 민주시민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태도와 소양을 함양하기 한결 어렵게 된 점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사회적으로 다양한 배경특성을 가진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게 되면 공동체의식이나 더불어 사는 지혜의 함양이 훨씬 수월해질 수 있다. 아울러 취약계층 학생들은 중산층 학생들이 일정 비율 이상 재학하고 있는 학교에 다닐 때 포부수준이나 학업성취에서 보다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자사고 정책은 민주시민 양성과 계층 간 교육격차 해소에 심각한 걸림돌로 작용할 소지를 안고 있다. 따라서 만일 정책당국이 자사고 폐지를 추진한다면 우수 학생의 유출에 따른 일반고의 학력 저하를 일의적 명분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보다는 양극화가 날로 심화되고 있는 계제에 이 정책이 계층 간 갈등은 물론 세대 간 갈등을 증폭시킬 개연성이 농후하고, 그로 인해 사회통합에 커다란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좀 더 강조할 필요가 있다.
 
   자사고의 대거 지정이 일반고의 위기를 초래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실 그 이전에도 일반고  위기의 조짐은 도처에 편재해 있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먼저 양극화 심화에 따라 학업성취에 대한 가정배경의 영향이 갈수록 증대되어 왔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연전에 TIMSS 데이터를 사용하여 외환위기가 한국 교육에 남긴 상흔을 실증적으로 검토한 적이 있다. 두 가지 중요한 연구결과를 얻었다. 하나는 외환위기 이후에 한국에서 가정배경이 학업성취에 미치는 영향력이 꾸준히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같은 일반고 내에서도 학생들 간에 학력격차가 확대되어 학교의 전반적인 교육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학생들의 학업성취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특성에 의해 좌우되는 정도도 외환위기 이후에 점차 증가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1990년대 후반 이래 학교 간 교육력 격차도 점차 확대되고 있었던 것이다. 
 
   상술한 결과는 외환위기 이후에 교육이 계층상승의 사다리로서의 기능을 점차 상실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징후는 기성세대의 의식에도 여실히 투영되어 있다. 통계청 사회조사에서 ‘본인 세대에 비해 자식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을 묻는 문항에 대해 2009년까지는 긍정적인 응답이 훨씬 우세했었다(높다 48.4% vs. 낮다 30.8%). 하지만 2011년 조사에서 처음으로 부정적인 응답 비율이 더 높아지기 시작했고(높다 41.7% vs. 낮다 42.9%), 2013년 조사에서는 그 격차가 더욱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높다 39.9% vs. 낮다 43.7%). 이 같은 부모세대의 비관적 전망과 절망감은 자녀세대에게도 그대로 전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저간의 사정을 두루 감안해보면 근자에 대다수 일반고 학생들이 우심한 무기력과 열패감에 빠져 있는 것이 크게 놀라운 현상은 아니라 하겠다. 
 
   그렇다면 일반고 살리기의 맥점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성적지상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지금처럼 일반고 위기의 진단 및 해법 제시가 성적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면 의도하지 않은 가운데 학부모들에게 상당히 잘못된 신호(signal)를 보내게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성적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사고 폐지를 극력 반대하는 학부모들을 설득할 명분도 약할 수밖에 없다. 현행 체제하에서는 일반고에 비해 자사고가 적어도 성적 향상이라는 측면에서는 분명히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고를 살리기 위해서는 성적지상주의 패러다임에서 탈피하여 모든 유형의 성취, 소질, 재능을 한결같이 가치 있고 소중하게 여기며 동급으로 바라보는 자세와 교육적 실천이 필요하다. 그리고 학부모들에게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인재관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적확하고 설득력 있게 알릴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이러한 추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적절한 정보의 제공이 이루어져야함은 물론이다. 개인적으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입장에서 반듯한 인성이 뛰어난 성적보다 훨씬 소중하고 희소한 가치임을 절감하며 생활하고 있다. 유수의 기업들도 이 같은 인식을 반영하여 채용관행을 바꾸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대다수 학부모들은 성적지상주의에 매몰되어 성적으로 자녀의 성취와 학교교육의 성과를 재단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이러한 학부모의 인식이 바뀌지 않고는 일반고의 미래지향적이고 혁신적인 교육적 시도도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같은 맥락에서 일반고 살리기에 명운을 걸겠다는 교육당국이 성적을 기준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논의하고 대안을 강구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접근이라 보기 어렵다.  
 
   우리는 지금 승자독식(winner-takes-all)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화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세계화시대에는 어떤 분야에서건 평범한 경쟁력을 가진 사람은 이전에 비해 자신의 입지가 현저하게 약화될 개연성이 크다. 이는 단지 성적 경쟁에서 다소간에 상대적 우위를 점했었다는 사실만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전에 비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반면 이전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했던 재능이나 능력일지라도 보기 드문 독특성이나 수월성만 담보된다면 세계화를 통해 크게 확대된 시장에서 새롭게 각광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교과 공부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학생들에 대해 성적 향상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들이 가진 소질 또는 재능 가운데 특별히 경쟁력이 있는 것을 발굴하고 계발하여 진로를 개척해주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이고 타당한 대안이 될 수 있다. 
   교과 공부에 동기나 흥미를 갖지 못한 학생들로 하여금 성적 경쟁에만 매달리게 하는 것은 승산 없는 경쟁에서 ‘실패할 수 있는 권리(right to fail)’를 부여하는 것 외에 다른 의미를 갖기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학생들로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를 다닐 명분을 찾기 어렵거니와 보람이나 성취감을 향유할 기회도 가질 수 없다. 따라서 교과 성적은 뛰어나지 않지만 다른 분야에서 훌륭한 재능과 소질을 지닌 학생들에게도 그러한 재능이나 소질을 사장시키는 일이 없도록 각별한 관심과 지원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교육적 노력과 실천이 이루어질 수 있는 분위기와 여건이 조성되어야 일반고 살리기가 가능해지고 지속성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고 살리기의 방향을 이렇게 설정한다면 교사의 역할이 무척 중요해진다. 개별 학생이 지닌 다양한 소질과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계발하는 데 교사의 관심, 안목, 그리고 열정이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현행 교사양성제도의 시대적 적합성과 타당성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성찰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교육적 실천은 가급적이면 이른 학교급에서부터 이루어질 필요가 있으며 연속성이 담보되어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이는 일반고 살리기가 단지 고등학교 단계 내에서의 문제로만 환원되어서는 실효성을 갖기 어려움을 시사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교육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어야 일반고를 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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